천안문사태 34주년
내일(4일)은 중국의 6·4 톈안먼 사태 34주년이다.
중국의 6·4사건은 1989년 4월 중순부터 시작된 후야오방(胡耀邦) 추모행사를 기폭제로 베이징 시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본토 고교생들이 발기해 두 달 가까이 계속된 전 지역 시위운동을 가리킨다.
좁은 의미로는 1989년 6월 3일 저녁부터 6월 4일 새벽까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무장경찰, 인민경찰이 벌인 시위집회 무력청산 작전을 가리킨다.
6.4사건은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상 하나의 전환점으로, 그것의 폭발은 개혁개방 이래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 대륙에서 추진한 후기 정치체제 개혁의 실패를 상징하며, 자오쯔양(赵紫阳), 바오퉁( 鲍彤)등 중공 온건파 고위층은 사후에 해임되었고, 후야오방(胡耀邦)은 이미 86학조 이후 중공 총서기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1980년대 다양한 정도로 추진되었던 자유화 개혁도 여기에서 중지되었고, 그 후 관변에서는 아주 적은 수의 시위 활동만 승인되었다.
6·4사건의 결과는 정치환경의 대폭적인 긴축 외에도 경제적 영향도 직접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개혁개방 둔화로 이어졌고,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이 되어서야 다시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6·4사태 직후 덩샤오핑(鄧小平)이 은퇴를 결정하면서 그의 재임 중 추진했던 간부지도직 종신제 폐지가 이어졌고, 이후 3대 정권의 평화적 교체가 완료되었으나 2018년 시진핑(習近平)의 개헌 이후 폐지됐다.
1989년 6월 4일 당시 중공군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정치 및 경제 개혁을 쟁취하는 학생 운동을 진압하여 많은 학생들이 죽고 도망치게 하였다.
후야오방은 64학운(6.4學運)의 학생들의 요구에 동조하다 파면 당했고, 그는 1989년 병사했다.
6.4 사태로 정확한 사망한수는 사실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보'(1989년 제11호)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인민해방군 군대, 무장경찰 및 경찰 수십 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이 부상했으며 비 군인은 3,000명 이상이 부상하고 대학생, 의료진, 대중 36명을 포함하여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외 보도의 사망자 수는 일반적으로 중국 보도의 사망자 수보다 훨씬 많다.
2014년 미국 백악관 기밀해제 문건에는 약 10,454명이 사망하고 40,000명이 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백악관의 보고서는 계엄군의 소식통이 제공한 중남해 내부 문건을 인용).
2017년 말 영국 국립문서보관소가 기밀을 해제한 문건을 보면 1989년 톈안먼 사태로 최소 1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이는 현재 가장 높은 수치다.
결과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데 중국 적십자사는 약 2600~3000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미 백악관 비밀해제 문건은 중국 측 계엄군 선민이 인용한 중국 측 내부 문건을 인용, 톈안먼(天安門)과 창안제(長安街) 8,726명, 톈안먼을 제외한 베이징성에서 1,728명, 총 사망자 1만454명으로 영국의 국무부 소식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34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혹시나 있을 소요에 대비하여 전국에 온통 비상이 걸려있다.
중국당국은 당시의 일부 희생자 유족과 이의신청자들에게 최근 잇달아 외지 여행을 강요받고 있다.
VOA보도에 따르면 베이징의 반체제 인사인 후자, 베테랑 언론인 가오위 등 일부 저명한 반체제 인사들은 6월 초 현지 국보(국내 안보원)에 의해 베이징을 떠나 이른바 관광을 위해 출국했다고 전했다.
가오위는 지난 6월 1일 허난(河南)으로 여행을 갔다가 일주일 뒤에야 베이징(北京) 집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후자유족은 후자가 최근 허베이성 장자커우 숭례리조트로 끌려갔다고 밝혔다.
또한 64사태 34주년 기념일에 북경에있는 사통교(四通橋) 표지판이 갑자기 철거되었다.
북경의 쓰퉁차오(四通橋) 항의는 2022년 10월 13일 베이징 시 쓰퉁차오(四通橋)에서 발생한 항의 행동이다.
이날 한 시위자는 이 다리에 현수막 2개와 확성기를 띄워놓고 시진핑(習近平)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를 '독재국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타이어를 불태우고 연기를 피워 눈길을 끌었다.
2022년10월13일 가운데 사통교라는 표지판과 함께 항의 시위문구가있다.
지금 중국의 유명한 웹싸이트 바이뚜(百度 baidu.com)에 6.4 천안문사건(六四天安門事件)을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抱歉没有找到与“六四天安門事件”相关的网页。“
“抱歉,没有找到与“六四天安門事件”相关的图片。“
“죄송하게도 '6·4 톈안먼 사태'와 관련된 홈페이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죄송하지만 6·4 천안문 사태와 관련된 사진은 찾을 수 없습니다.“ 라는 내용이다.
또한 6.4.관련하여 홍콩에서도 민감한 시각 관영방송 철수 34년 대자보·극장 전세 상영 취소하였다.
이제 중국은 아예 6.4사태를 역사 속에서 지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것이 다시 살아날 날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지금의 정권이 영원할 수는 없을 테고 젊은이들이 다시 세상을 이끌어 나갈 테니까.
당시의 사진을 보면 4.19혁명 때보다 더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