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있는 우리의 유적지-10-
중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중국에는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들은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중국으로 옮겨 자리를 잡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일본의 압박으로 임시정부는 상해,항주,전장, 난징,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중경 등으로 계속 거처를 옮겨가며 항거를 했다.
당시의 임시정부의 상황을 보면
上海市상하이,상해 中国上海市 1919年4月10日~1932年5月
杭州市항저우,항주 中国浙江省 1932年5月~1932年10月
镇江市전장, 진강 中国江苏省 1932年10月~1932年11月
南京市난징, 남경 中国江苏省 1932年11月~1937年11月
长沙市창사, 장사 中国湖南省 1937年12月~1938年7月
广州市광저우 광주 中国广东省 1938年7月~1938年11月
柳州市류저우,류주 中国广西省 1938年11月~1939年5月
綦江县치장, 기강 中国重庆市 1939年5月~1940年9月
重庆市총칭, 중경 中国重庆市 1940年9月~1945年11月
그 중에서도 상해(上海)와 항저우(杭州)그리고 중경(重庆)의 임시정부 때에는 청사도 있고 중요한 사건을 처리 한 곳으로 이 세 곳에 가면 관광을 해 볼만 하다.
상해 임시정부(上海临时政府)
상해 임시정부는 3.1 운동이 발생한 직후 조직적 항거를 목적으로 독립 운동가들이 활동하던 본거지이다.
이 곳은 1932년 5월 항저우로 이전하기 전까지 무려 13년 동안 운영되었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인
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홍구 공원에서 윤 봉길 의사의 일본 육군 대장 시라가와를 암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로 당시 독립 운동가들은 훨씬 더 심한 일본의 탄압에 시달리게 되었다.
상해의 임시정부 청사는 상해를 여행하는 관광객 들에게는 필수 적이다
다행히도 모두 철거위기에 있었던 것을 보존하게 하였고 새로이 복원을 하여 놓아서 2015년 9월 4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상해 임시정부의 개막식에 참석도 하고 독립당시의 일을 추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위치가 잘 알려져 있지를 않아서 개별 관광객들은 사전에 위치를 알고 가야 한다.
항저우 임시정부(杭州韩国临时政府)
항저우 임시정부는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 공원 의거 후 일본에게 쫒기며, 새로운 터전을 찾던 임시정부 요인들과 가족들이 중화민국 정부의 도움으로 마련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공식적인 두 번째 청사이다.
항저우 임시정부 설립 이후에도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의 탄압으로 인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는데 임시 정부를 없애려는 일본의 압박에 의해 독립 운동가들은 중국의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등으로 계속 거처를 옮겨야 했다.
중경 임시정부 (重庆韩国临时政府)
항저우에서 다시 장소를 옮기다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은 중경 임시정부는 독립 운동가들이 1940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중경 임시정부는 6년 간 유지되었는데 이 시기는 임시정부가 중국 지역 내에서 펼친 독립운동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활발한 활동을 했던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1990년대 초에 충칭 도시 재개발 계획으로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한국과 중국 정부의 공동 노력으로 보존 되었다.
이후 1995년 8월 11일 정식으로 복원 및 개관되었으며 현재는 독립열사와 광복군의 사진과 유물, 영상자료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의 규모가 가장 큰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