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11월1일(목)-오후
관림당(關林堂)과 백마사(白馬寺)
용문석굴을 보고 바로 버스정류장에서 다음 행선지인 관림당을 찾았다.
관림당 關林堂(관린탕)은 우리가 삼국지로 유명한 관우(關羽)를 기리는 곳이다.
삼국시대 촉(蜀)의 장수 관우를 오(吳)나라의 손권(孫權)이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환심을 사기 위해 관우의 목을 잘라 보냈다.
그러나 조조는 관우를 의사(義士)라 하여 제후의 예를 갖추어 극진히 장사를 지냈다.
관림당은 바로 당시의 관우의 목이 묻혀있는 곳이다,
그 뒤에 후삼전(後三殿)을 세우고 보존을 하여왔는데 이 안에는 우리가 삼국지에서 머릿속으로 생각해 왔던 장대한 관우상이 한가운데에 있고 건물의 벽면에는 삼국지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으며 관우가 사용하였다고 하는 3m 정도 되는 칼(청룡도)도 있다.
삼전의 뒤에는 팔각의 붉은 담으로 둘러싸인, 관우의 머리를 묻었다는 무덤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무덤의 관리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깨끗이 하지 않아서 무덤 위에 나무들이 무성하다.
우리나라는 무덤위에 나무가 있는 곳이 없는데 백거이의 무덤이나 관우의 무덤이나 봉분위에 커다란 나무들이 그대로 자라고 있다.
관림당을 나와서 부근에 있는 음식점을 찾았다. 구경을 하느라고 점심때를 놓친 것이다.
항상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위샹러우스와 공기 밥을 주문하고 계란탕을 곁들여 먹으면 그대로 그만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다음 행선지인 백마사(白馬寺)로 향했다.
백마사는 후한(後漢)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중국의 불교 전래 후의 최초의 사원이다.
백마사사는 이름은 황제가 인도에 불경을 가지러간 일행이 흰말(백마-白馬)에 경전을 싣고 돌아온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사찰을 보면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입구에 사천왕 그리고 각종 불당과 함께 대웅보전이 있는 것은 우리와 같은데 각 건물 안을 신발을 신은채로 구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불당 안을 자세히 둘러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불상 뒤편으로 돌아가면 뒤편에 또 다른 불상이 모셔져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또 다른 불당을 신을 신은채로 구경을 하고 다시 뒤로 나가는 그런 식이다.
이는 우리나라는 법당을 들어가려면 신을 벗고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다시 신을 신고 나와서 다음으로 가서 또 구경을 하는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그냥 밖에서 대충 법당을 보는 것과 다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불을 드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팔고 있는 향의 크기가 사람 키보다도 더 큰 것이 있고 향불을 피우는 것도 한 무더기를 그대로 다 꽂고 예불을 올리는 것이다.
법당 안에는 예불을 드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방석이 마련되어있다.
백마사의 구조 또한 우리나라의 사찰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본 절을 구경하고 동쪽으로 200m 정도 가면 제운탑(齊雲塔)이 있다.
본래의 이름은 석가사리탑, 금방탑, 백마사탑이라 부르던 것이다.
1175년에 중건되었는데 높이 35m의 13층 탑이다.
이곳에는 하나의 기이한 것이 있는데 제운탑 남쪽 약 20m되는 곳에서 손뼉을 치면 탑신(塔身)근처에서 개구리 울음소리와 매우 유사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물리학적 현상인데 탑면의 요철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손뼉을 쳐봐도 내 귀엔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불심이 없는가 보다.
오후 4시 반이면 입장을 할 수 없어서 부지런히 돌고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정주로 돌아오니 저녁 6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