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 석굴사 (巩县石窟寺)
공현 석굴사는 용문석굴에 이어 북위시대 또 하나의 위대한 불교예술의 보고다.
낙양에서 북동쪽으로 약 55km 떨어진 망산(望山) 동쪽의 대력산(大力山) 아래의 석벽에 위치해 있는데 곧 허난(河南)성 공현 효의진(孝義鎭)에서 북동쪽으로 9km 떨어진 사만촌 동쪽에 있다.
이곳은 산이 밝고 물이 많으며 숲이 무성하고 대나무가 우거져 예로부터 낙양 지역의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석굴사는 원래 희현사(喜玄寺)라고 불릴 정도로 웅장한 건물들이었다.
석굴 조각은 선무제(원각)경이 내년에 시작하다가(기원후 500-503년), 이후 동위, 서위, 북제, 당, 송, 금, 명, 청대 옹정까지 중수하였다.
불상의 조상은 북위(北魏)를 위주로 하고, 속각에는 북제(北齊)와 당대(唐代)에 많았다.
석굴사에는 석굴암이 다섯 곳 있고, 천불감이 하나 있다.
소불감 255기, 마애대불 3존등 석굴은 모두 7천7453기, 비각은 200여기에 달한다.
공현석굴은 배치가 치밀하고 내용이 풍부하며, 조식이 잘 되어 있고, 디자인이 통일된 특징이 있는 중원지역의 중요한 불교 석굴이다.
1982년에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은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공포되었다.
巩县石窟寺 희현사(喜玄寺) 입구
▲공현석굴제3굴 중심방주석굴
중심 기둥은 사방과 굴 안 사방벽, 조각천불, 석가다보대좌상, 유마문수병좌상, 삼불 등의 소재.기단은 십신왕, 괴수, 기악을 새겼다.
이 중 제5굴 입구 좌벽에는 용삭 2년(662)에 '후위 효문제 고희현사지비(後魏孝文帝 故喜賢寺之碑)'를 새긴 것으로 유명하다.제1굴의 규모가 가장 크다.
외벽 입구 좌우에 있는 역사상으로, 손에 금강저고리를 들고 만든다.
5개의 굴은 모두 사각 평면이다
그리고 제5굴 외에 모두 중심탑기둥을 가지고 있고, 기둥은 사방으로 감실을 뚫어 설치하였고, 굴 천장을 뚫어 바둑을 만들고, 각기락이 하늘을 나는 것, 연꽃과 같은 부조들을 만들었다.
얼굴 모양이 네모 반듯하고 옷맵시가 소탈하며 문양이 간결하다.
▲공현석굴제3굴 중심방주석굴
중심 기둥은 사방과 굴 안 사방벽, 조각천불, 석가다보대좌상, 유마문수병좌상, 삼불 등의 소재이고
기단은 십신왕, 괴수, 기악을 새겼다.
이 중 제5굴 입구 좌벽에는 용삭 2년(662)에 '후위 효문제 고희현사지비(後魏孝文帝 故喜賢寺之碑)'를 새긴 것으로 유명하다.
제1굴의 규모가 가장 크다.
외벽 입구 좌우에 있는 역사상으로, 손에 금강저고리를 들고 만든다.
용맹스럽고 강건하다.
▲ 공현석굴천불감실
구도가 치밀하고 변화무쌍하며 인물. 고람전신은 중국에 현존하는 이런 조각들 중에서 비교적 완전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하여 있다.
제1굴센터 주북감 양쪽에서 새로 발견된 상의동, 개국현 개국후 개부진주자사식간지시불 기증시 등 두 문항은 북주시대 때 보각됐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