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009. 2. 20. 16:15

廣開土大王碑(광개토대왕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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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릉과 비를 보려면 우선 단동을 가야한다.

인천공항에서 떠나는 비행기나 인천 항구에서 떠나는 단동행 배를 타면 된다.

그리고 거기서 단동에서 다시 집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이왕에 동북을 보는 것이라면 단동, 통화, 집안을 둘러보면 되는데 시간은 천천히 잡아도 4-5일이면 된다. 그리고 동북삼성(길림,흑룡,요녕)에는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어서 대화나 음식 등에 불편이 없다.

광개토대왕비는 중국에서는 하오타이왕뻬이(好太王碑-호태왕비)라고 한다.

이 비는 414년 고구려 20대 왕인 장수왕이 자기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22 년간의 재직 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길림성 집안현 통구(吉林省集安縣通溝)에 진회색의 천연 암석으로 되어있는데 위 부분은 굵고 아래가 가는 사면체의 기둥 모양으로 되어있으며 높이는 약 6.39m 너비 1.35m-2m이며 무게는 약 37t이나 된다.

그런데 이 비를 받치고 있는 상석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갈 정도로 너무나 작다.

비의 네 면에는 44줄로 되어있고 각 줄에는 41자씩 모두 1,775자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지금은 1600년이란 긴 세월의 풍상 때문에 약 300자 가량이 탈락되고 마모되어서 현재는 식별을 할 수 가없을 정도이다. 이것 때문에 한국역사를 왜곡시키기에 혈안이 되어온 일본과 그 해석을 두고 마찰을 빚고 있다.

그리고 서체는 예서체로 되어있어서 비문의 완전한 판독을 어렵게 하여주고 있다.

세 부문으로 되어있는 비문은 1부는 고구려의 건국신화를, 2부에는 광개토대왕의 업적과 영토를 넓힌 공로를, 그리고 마지막 3부문에는 비석과 능묘를 지키는 守墓人煙號(수묘인연호)의 내력과 직책 등을 적어놓았다.

옛날에는 마음대로 안에서 사진을 찍 했는데 어느 때 인가부터 중국 측에서 특별 관리를 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외부의 출입을 차단하고 유리로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아마도 중국이 고구려 땅이 자기 것이라는 동북공정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처음의 비석



최근에 모습

얼마전만 하더라도 안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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