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여행
長春은 봄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름이 지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長春이 유명한 것은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왕인 溥儀(부의)가 일본의 지시로 滿洲國(만주국-1932년~1945년) 이라는 나라를 만들어놓고 그를 일본의 꼭두각시 왕으로 하여서 기거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의 만주국의 영토는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주로 동북지역이며 인구는 대략 3천만명 가량이었다.
그래서 僞皇宮(위황궁) 이라는 宮(궁)이 있는데 宮이라기 보다는 전에 소금창고로 쓰던 건물을 수리해서 살았던 곳이다.
溥儀(부의)는 일본인의 도청을 막기 위해서 이곳을 皇宮(황궁)으로 택하였다고 한다.
황궁 안에는 당시 부의의 생활모습과 부의의 일생을 나타내는 자료들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波瀾萬丈(파란만장)한 皇帝 溥儀(황제 부의)에 대하여
흔히 말하는 비운의 황제 溥儀(부의)는 청나라 광서 32년(1906년) 북경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재풍으로서 醇賢親王(순현친왕)의 다섯째 아들이었다.
다섯 형제중 위로 세 명은 일찍 죽고 둘째가 西太后(서태후)의 권유로 입궐하여 광서 황제가 되었다.
그 후 자연히 아버지 순천왕의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러다 광서 황제가 갑자기 병이 위급해지자 당시 실세였던 서태후는 자기가 계속 정권을 잡기 위하여 당시(1906년 10월20일) 세 살밖에 안된 부의를 황제로 봉하였다.
부의가 입궐한 후 광서 황제가 숨을 거두고 이틀 뒤 서태후마저 세상을 뜨게 된다.
그 후 부의는 1908년 11월9일 청나라 제 10대 황제로 등극을 하고 연호도 宣統(선통)으로 바꾸고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1911년 중국 현대사의 유명한 신해혁명이 일어나 袁世凱(원세개)에 의해 불과 3년 만에 퇴위를 당한다.
그 후 원세개가 죽고 나서 다시 복위를 하였으나 1924년 馮玉祥(풍옥산)에 의해 다시 쫓겨 난다.
그리고 일본이 만주 침략을 하고 나서는 일본에 이끌려 일본이 세운 滿洲國(만주국)의 왕이 되었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같이 퇴위가 되었다.(재위기간1934-1945)
이렇게 퇴위와 즉위를 세 번씩이나 반복한 부의는 일본으로 가던 도중에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이제는 蘇聯(소련)땅 하바로프스크까지 끌려가 거기서 억류생활을 하게 된다.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1950년 다시 중국으로 송환되어 무순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1959년 특사로 풀려 나와 북경 식물원의 정원사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1967년 10월16일 서민으로 돌아 온지 18년 만에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사망 당시에는 북경시내 八寶山(팔보산)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1995년 1월 하북성 이현에 있는 청나라 황능으로 이장되었다.
죽은지 28년 만에 다시 청나라 황제로 복권된 것이다.
부의 에게는 모두 다섯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첫째 부인은 부의의 아이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고 두 번째 부인 역시 그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 세 번째 부인은 담령 인데 그와는 사별을 하였고 네 번째 부인과는 이혼을 하였다.
마지막 다섯 번째 부인은 그가 56세 때 37살의 여자로서 주은래가 주선을 하여 결혼을 하였다.
이와 같은 波瀾萬丈(파란만장)한 그의 일대기를 보고 모든 사람은 그를 비운의 황제라 부르는 것도 이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