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있는 우리의 유적지-8-
안중근(安重根)의사의 숨결이 있는 하얼빈(哈尔滨)역과 대련의 여순감옥(旅順监狱)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哈尔滨)역의 이등박문 저격 장소
나는 2000년 봄 중국의 여행지를 안 중근 의사의 저격 장소를 가보려고 하얼빈으로 떠났다.
하얼빈에 있는 한국인 민박집에 묵을 때 주인과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하얼빈역의 안 중근 의사의 저격 장소를 가려고 한다"고 하니 주인이 그곳을 가려면 하얼빈역의 입구로 들어가면 잘 못 찾고 또 그곳을 가는 한국 사람들도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한 장소는 하얼빈역 출구 쪽에 있어서 그곳을 가려면 입구가 아닌 열차에서 내려서 나오는 문으로 들어가야 빠르다는 것이다.
자세히 알려주는 민박집 주인의 말을 따라 다음날 나는 하얼빈 역 후문을 지키는 경비에게 “손님이 오는데 짐이 많아서 같이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다행이도 내가 중국어를 할 줄 알기에 먹혀든 것이다.
들어가서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저격 장소를 겨우 발견을 했는데 당시에는 저격 장소에는 특별한 표시도 없고 바닥에 색 칠을 한 보도 블럭으로 그냥 표시만 해 두었을 뿐이다.
당시 나는 어떻게 이렇게 방치를 해 두었을까? 하는 마음에 좀 허망한 생각이 드는 것 이었다.
다행히도 그 후에 박 근혜 대통령 시절에 그곳에다 표지판도 걸어놓고 기념관도 건립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한국의 관광객들에게 그 곳을 관광코스로 한다는 것이다.
뒤늦게 나마 그렇게 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다롄(大連)의 여순감옥(旅順监狱)
여순감옥(旅順监狱)은 한국인으로는 독립운동가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박희광 등이 수감생활을 했던 곳이고 안중근과 함께 거사한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도 이 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뤼순 감옥 옛터는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커우구 샹양가 139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부지 면적은 22.6만 제곱미터이다.
뤼순 감옥의 옛 터는 원래 뤼순 형무소로 불렸으며, 청 광서(清光绪)24년(1898년)에 제정 러시아에 의해 건설되었고, 이후 일본 침략자들에 의해 확장되어 민국(民国)34년(1945년) 8월까지 사용되었다.
총 85개의 감방과 1개의 2층 청벽돌 사무실이 건설되었으며 러일 전쟁 기간 동안 제정 러시아 때에는 마대 병영과 야전 병원을 운영했다.
감옥은 1902년부터 1904년까지 건설되었으며, 러일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인은 1907년에 원래의 제정 러시아 감옥을 기반으로 대규모 확장을 진행했다.
감방은 85개에서 253개로 증가하였고, 벽 밖에는 가마와 채소밭이 추가되었으며, 동시에 마당에 15개의 공장이 건설되어 죄수들이 군수품과 일용품을 생산하도록 강요받았다.
감옥 주변에는 둘레 725미터, 높이 4미터의 붉은 벽돌 담장이 세워졌고, 전력망과 건물이 설치되었으며, 담장 내 면적은 26,000제곱미터에 달했다.
뤼순 교도소에 수감된 "범인"은 일반적으로 수백 명이며, 1942년 태평양 전쟁 발발 후 최대 2000명이 수감되었다.
당시의 수감자 대부분이 중국인이고, 조선과 일본인도 있었다.
그 후 중국에서는
1988년 1월 13일, 뤼순 감옥 옛 터가 국무원에 의해 제3차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발표되었다.
2005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에 의해 '전국 애국주의 교육 시범 기지'로 명명되었다.
2007년, 랴오닝성 국방교육위원회에 의해 '랴오닝성 국방교육기지'로 명명되었다.
2017년 12월 2일, 제2차 중국 20세기 건축유산 목록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