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중일전쟁의 발생지 노구교(卢沟桥)

goyoon 2015. 8. 2. 18:39
728x90
반응형

 

이번 방학때 북경여행을 개별적으로 하는 사람은 중일전쟁의 발상지인 노구교(卢沟桥)를 가볼만하다.

중국에서는 7.7사변이라고도 하는 중일전쟁은 노구교에서 시작되었다.

이야기는 노구교부근에서 훈련을 마치고 귀영하던 일본군병사 한명이 뒤를 보러 가면서 대오에서 낙오

(落伍)를 했다.

나중에 일본군은 이 병사를 찾는 소동을 벌리며 사건은 급기야 중국과 일본 두 나라 군대의 교전으로 치닫는다.

항일전쟁의 시발인 1937년 7월 7일, '노구교 사변'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노구교는 북경역에서 서남쪽으로 약 20㎞에 있다.

입장료는 20위안(약 3,600원)이다.

가는 방법은 북경서역 북광장에서 301번 버스로 항전조소원(抗战雕塑园)에서 내리면 북쪽방면에 있고, 택시를 타면 30분이면 되는데 요금은 약 85원(15,000원정도)나온다.

 

수나라 개황(开皇) 년간에 설계하고 금나라 대정(大定) 29년(1189) 시공을 했으며 명나라 정통(正统) 9년(1444) 중수(重修)했다.

이는 북경시의 현존하는 제일 오랜 석조 아치형 다리이다.

길이가 267m이며 아치형 다리구멍이 11개로 양쪽 난간에는 망주(望柱)가 각기 140개나 된다.

그러나 이런 일목요연한 수치와는 달리 망주위에 조각된 돌사자는 도대체 몇 개가 되는지 아무도 정확한 수자를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속담으로 "'노구교의 돌사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헤아리기 힘들다”라는 뜻으로 통한다

  

이 돌사자의 정확한 숫자를 모르는 이유는 어미 돌사자에게는 새끼 돌사자가 여러 마리나 매달려 있고 등에 한 마리가 업혀있었고 발밑에 한 마리 재롱을 부리고 있었으며 또 두 마리가 품을 파들고 있는등 정확히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정확한 숫자를 알기 위하여 1962년 해당 기관의 요원은 매 사자마다 번호를 달면서 전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나중에 크고 작은 돌사자가 485마리라는 것을 밝혀냈다.

돌사자의 수자는 이로써 미스터리가 풀리는 듯 했다.

그런데 1979년 재조사에서 또 17마리가 발견되며 돌사자는 502마리로 된다.

현재 노구교 문물보호부문이 제공한 수치에 따르면 노구교의 돌사자는 도합 502마리이지만 실제로 누구도 이 숫자에 마침부호를 찍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노구교의 이름은 갈대 골짜기의 다리라는 의미의 로구교(卢沟桥)라고 부른다. 옛날 이 지역에 갈대가 무성하다고 해서 로구하(卢沟河)라고 강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건륭황제가 쓴 "노구요월(卢沟晓月)"

 

 

양쪽에 이런 돌 사자가 조각되어 있는데 그 숫자를 잘 모른 다고 한다.

 

 

 

중일전쟁의 치욕을 잊지말자는 중국의 구호

 

 

 

 

멀리서 본 노구교

728x90
반응형